유인태 의원 사형 선고 폐지론.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인 지난 1974년 당시 인민혁명당 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바 있던 유인태 의원은 그후 사형제 폐지운동에 전념했던 인물이다.

 

유인태 의원 프로필

 

유인태 전 국회의원, 전 정무직공무원


출생 생년월일1948년 9월 5일

유인태 나이 만 69세 고향 충북 제천시

 

가족 집안 유인태 어머니 아버지 부모님

유인태 동생 유인택

 

유인태 학력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유인태 출신학교 경기고등학교

 

수상 2005 환경재단선정 2005 세상을 밝게 만든 100인

경력2014.06 제19대 국회 후반기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 외 10건

 

사이트sns 유인태 블로그, 페이스북

 

 

 

2016년 실제로 유인태 의원은 사형제 폐지를 호소 한 바 있다. 다잇 유인태 의원이 ‘왜 사형제를 폐지해야 하나?’를 역설하자 여야 의원들 모두 유인태 의원에게 박수갈채를 보냈다.

 

 

 

유인태 의원은 더불어민주당 공천배제 대상에 포함돼 사실상 19대 국회를 끝으로 정치행보를 접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유인태 의원이 본회의장에서 여야 의원들에게 선거제도 개혁과 사형제 폐지를 강력히 호소했던 걸로 기억한다. 

 

 

(유인태 졸음 과 고심 사이 라고 나왔던 사진이다)

 

당시 유인태 의원은 당의 현역의원 평가 결과 컷오프 대상에 포함돼 공천에서 원천 배제됐으나 당당하게 “당의 결정을 따르겠다”며 이날 국회 본회의장에 첫 등장해 이와 같은 토론을 쏟아내고 동료 의원들의 박수를 받으며 아름답게 퇴장했다.

 

 

 

이런 유인태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현재 국정원 특활비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드러내면서 홍준표 의원을 겨냥해 비판해 화제다.

 

 

 

유인태 전 수석은 24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 인터뷰에서 “노무현 정부에서 수석들이 쓴 특수활동비 내역은 국가기록원에 보관돼 있다”며 이야기 했다.

 

 

 

그러며 유인태 의원은“노무현 대통령이 처음 취임해서 전 수석 보좌관들 모아놓고 ‘우리 역사에 당당합시다, 투명합시다. 그러니까 이 특활비를 전부 내역을 적어서 기록관에 남기자’고 하셨다”고 했던 말을 전했다.

 

 

 

특히 유인태 의원은 야당을 중심으로 관행에 불과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6공 무렵까지 우리나라에 전기고문, 물고문 같은 고문이라는 게 아주 횡행했다”며 “자백하라고 수사관이 고문하는 것인데 당시 관행이니까 괜찮다는 것과 똑같은 얘기”라고 꼬집었다.

 

 

 

유인태 전 수석은 이날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와 인연이 있다고 밝히며 그에 대해 비판을 이어갔다. 유인태 전 수석은 “개인적으로는 이런 저런 인연으로 좀 아는 사이인데 원래 사람이 저렇게 구질구질한 친구가 아니었다”면서 홍준표 의원을 겨냥해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며 유인태 의원은 “지하철 공짜 타는 나이가 아직 안 돼서, 만65세가 되면 지공선사라고 하는데 홍준표 대표가걱정이다." 라며 말을 이었다.

 

 

 

유인태 의원은 홍준표 의원을 겨냥해 "자기가 엊그제 한 말을 가지고 오늘 또 뒤집고, 기억한다고 하면 저런 말을 못할 것 아니냐. 저렇게 말 바꾸기가 쉽지 않다. 요새 좀 걱정스럽다”고 지적해 눈길을 끌었다.

 

 

 

한편 유인태 전 수석은 앞서 잠깐 언급 한 것처럼 1970년대 ‘민청학련인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바 있다.그리고 이에 대한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패소했다.

 

 

 

당시 2심 법원은 1심과 달리 유인태 전 의원이 과거사 재심 무죄 판결이 확정된 시점부터 6개월이 넘어 소송을 냈기 때문에 대법원 판례에 따라 시효가 지나 권리를 청구할 수 없다고 봤다.

 

 

민청학련 사건은 1974년 유신 정권이 불온세력의 배후 조종을 받아 대규모 폭동을 일으키려 했다는 혐의를 씌워 180여 명을 구속기소 한 사건이다.

 

 

 

유인태 사형 선고를 받았다가 무기징역으로 감형돼 수감됐고, 1978년 8월 형집행정지로 석방됐다. 2012년 1월 말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확정받고 같은 해 3월 형사보상금 지급 결정을 받았으며 이듬해 2월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었다.

 

 

 

생명과 존엄, 인권을 다루는 유인태 의원의 끈기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흉악범도 사형만은 면해야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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