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개구리소년 실종사건 범인 군인 유골.
지금까지도 전대미문의 사건으로 언제나 대구 개구리소년 사건이 언급된다.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고 있고, 중간중간 영화로도 제작된 바 있을 정도로 큰 사건이었다.
이 사진을 기억하는 분들은 이제 제법 나이가 있으실 거라 생각된다. 필자도 아직도 또렷히 기억나는 이 실종포스터가 눈에 훤하다.
김종식, 김영규, 우철원, 조호연, 박착인 등 실종된 어린이들 평균 나이는 고작 11~!2살 정도였다. 26년이 지나 지금도 살아있다면 개구리 소년 실종사건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우철원 군의 나이는 마흔. 그정도로 길고 안타까운 미제사건이다.
(개구리 소년 실종사건는 '아이들' 이란 영화로 제작됐었다)
"대구 개구리소년 사건"
개구리 소년 실종사건의 시작은 1991년 3월 26일은 전국의 광역 기초 지방의원을 뽑는 선거일이어서 임시공휴일이에 일어 난다.
아침 8시 무렵 성서국민학교에 재학 중이던 3~6학년 어린이 6명 우철원(당시 나이 13살 6학년,1979년 생), 조호연(5학년,1980년 생), 김영규(4학년,1981년 생), 박찬인(3학년,1982년 생), 김종식(3학년,1983년 생), 그리고 김태룡(3학년,1982년 생)은 조호연 군의 집 근처에서 놀고 있었다.
(2002년 개구리소년 유골발견 현장)
조호연의 집에 세 들어 살고 있던 청년은 아이들에게 시끄러우니까 나가 놀라고 핀잔을 줬다고 한다. 그렇게 6명 가운데 김태룡은 이때 집으로 아침을 먹으러 간다.
나중에 급히 아이들을 뒤쫓아 와룡산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따라잡았지만, 산에 따라갈까 하다가 "너무 멀리 가서 놀지 말라"는 어머니의 말이 생각나서 혼자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고 한다.
크게 보면, 그는 개구리 소년들 중 이 끔찍한 사건의 화를 면한 유일한 생존자이다. 현재 김태룡에 관한 그의 근황은 알 수 없다.
김태룡이 집에가 출발을 망설이는 사이 우철원 군을 비롯한 5명의 아이들은 분유 깡통과 막대기를 챙겨들고 인근 와룡산으로 갔다.
조호연의 형 조무연(당시 중학교 1학년,1978년 생)은 자전거를 타고 와룡산 입구에 갔다가 아이들을 만났는데, 도롱뇽 알을 찾으러 간다는 말을 듣고 아이들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남겼다.
"개구리 소년 목격"
와룡산 기슭 마을에 살면서 시내에 나가 파출부 일을 하는 김순남 아주머니가 아침 9시쯤 아이들을 목격했다고 한다. 조호연의 형 조무연(당시 중학교 1학년.1978년 생)은 자전거를 타고 와룡산 입구에 갔다가 아이들을 만났는데, 도롱뇽 알을 찾으러 간다는 말을 듣고 아이들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왔다. 가족의 마지막 목격인 것.
같은 학교 4학년에 다니던 함승훈(1981년 생)은 아이들을 보지는 못했지만 증언을 남겼다. 와룡산 바로 밑 군인 아파트에서 살고 있던 함승훈은 이 날 동네 형과 함께 역시 도롱뇽 알을 찾으러 와룡산 계곡에 갔다고 한다.
함승훈은 형들과 혼자 떨어져 혼자 와룡산 중턱에 있는 무덤가 근처까지 올라갔는데, 그때 산 위쪽에서 10초쯤 간격으로 다급한 비명소리를 2차례 들었다고 한다.
김종식 군의 어머니 허도선과 김영규 군의 어머니 최경희는 함승훈이 산에서 비명을 들었다는 11시 30분 쯤에, 똑같이 가슴이 오그라드는 듯한 묘한 '위기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들을 찾아 나섰다가 와룡산에 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집에 돌아오면 야단이나 쳐야겠다고 생각했으나, 점심 때가 훨씬 지나서도 아이들이 돌아오지 않았다.
부모들은 6시쯤부터 와룡산 주변에서 아이들을 찾다가 허탕을 치고 저녁 7시 50분에 경찰에 신고하였다. 경찰은 아이들이 와룡산에서 길을 잃었다고 보고 부모들과 함께 다음날 새벽 3시까지 샅샅이 산을 뒤졌으나 아이들을 찾지 못했다. 이렇게 아이들은 사라졌다.
"개구리소년 실종사건 범인 군인?"
소년들의 유해가 발견된 곳에서 400m 떨어진 곳에는 50사단 사격장이 있었으며, 2002년 대구의 한 구두닦이방에서 30대로 보이는 한 손님이, "군 복무 중 갑자기 튀어나온 소년 5명을 오발하여 1명이 즉사, 1명이 부상당한 사건이 있었는데, 5명 전부 다른 곳으로 끌고 가 죽이고 은폐했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함승훈이 들은 비명과도 유사했기에 이를 들은 구두닦이방 주인은 제보를 한다. 하지만 50사단에서는 소년들이 실종된 당일은 임시공휴일이었기 때문에, 그 날은 사격 일정이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이에 대해 당시 주임원사가 진술한 바 있다.
하지만 개구리소년 실종사건 범인이 군인이라는 오인 사격 사실은 근거가 낮다. 미상으로 밝혀진 상흔이 총격으로 인한 관통상이 아니냐는 의혹이 있었지만, 이 역시 밝혀지지 않았다.
여담으로 현재 대구 서문시장을 가면 웬 거렁뱅이 한 사람이 술에 취해서 군인들이 개구리 소년들을 쏴죽였다고 떠벌리고 다니는데 별로 믿을 것은 못되지만 이 사람이 떠드는 것을 보고 음모론을 당시 꽤 믿었다고 한다.
하지만 살해방법과 같은 핵심 증거들이 영구미제가 되었기 때문에 발포설은 무작정 아니라고 할수는 없다. 개구리 소년들의 유해가 당시 사격장 근처에 묻혀있었다는 점과 시신이 매듭 묶기 전문가에 의해 매듭 묶기가 되어 있었다는 점, 상식적으로 범인 1명이 아이 5명을 동시에 제압하기 힘들다는 점이 이 설을 신빙성을 더할 뿐이다.
일부 소년들의 옷은 일반인이 거의 하지 못하는 정교한 매듭 방식으로 묶여 있었다. 이 때문에 범인, 공범이 있을 경우 최소한 일부는 평소 포장 작업 등에 종사하는 노동자이며, 임시 공휴일에 회사를 쉬면서 범행을 저지른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故 김영규, 故 박찬인, 故 우철원, 故 조호연, 故 김종식 군. 1990년대 초반을 살았던 이들이라면 누구나 기억하는 얼굴들 그만큼 광범위한 수색속에서도 범인을 찾지못했다. 어쩌면 실종전단지를 나눠주던 그 동네의 누군가일 수도 있다. 만약 범인이 살아있다면 평생을 속죄하며 자신의 죄에 대해 나중에라도 고백하며 자수하길 바란다. 더불어 개구리소년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며 26주기를 추모한다. 하늘에서나마 평안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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