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인가수 이용복 부인, 가족 감동적인 이야기.

 

 

한국의 레이찰스라 불리우는 맹인가수 이용복을 아는 젊은 세대들은 흔치 않을 거다. 데뷔한지 40년이 넘은 그의 이야기 속엔 가족, 그리고 이용복 부인이 언제나 함께 했다. 현재 만리포해수욕장 이용복 펜션과 케페를 운영중이다.

 

 

이영복 프로필

 

이용복 가수
출생 생년월일 1952년 6월 27일

이용복 나이 만 65세 고향 대구

가족 집안 이영복 부인 아내 김연희

자녀 이영복 쌍둥이 아이들

 

데뷔1970년 앨범 '검은안경'사이트팬카페

 

 

 

시각장애인 가수 이용복은 지난 1970년 18살의 나이로 앨범 '검은안경'으로 데뷔했으며, ‘그 얼굴에 햇살을’ ‘어린 시절’ ‘줄리아’ 등 숱한 히트곡으로 10여년 동안 최고 가수로 군림했다.

 

 

 

또한 이용복은 기타리스트로서도 재능을 보여 양희은의 데뷔 앨범 '아침 이슬'에서 12줄 기타를 맡기도 했다.  대한민국 최초로 맹인가수로 한시대를 풍미했던 가수다.

 

 

 

이런 이용복은 TV 가 없던시절 라디오에서 명석한 두뇌와 해박한 지식과 말솜씨로 당시 인기 프로그램 동아방송의 "유쾌한 응접실"에 출연해 화려한 입담으로 웃음과 놀라움을 안겼다.

 

 

시각장애 가수로 활동 하는 것이 ‘핸드캡도 메리트도 아니다’라고 단점과 장점을 구분하지 않고 자신의 소신을 밝히는 이용복의 모습에서 당당함을 엿볼 수는 부분이 많은 인물이기도 하다.

 

 

 

"이용복 눈이 안보이게 된 이유, 시력 잃은 이유"

 
가수 이용복은 언제나 인생을 살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명하고 있지만 그에게는 아픈 과거가 있다. 바로 그가 맹인이 된 순간이다.

 

 

지난 1952년 대구 내당동에서 태어난 이용복은 어린시절 집안 마루에서 놀다 마당으로 떨어지면서 돌부리에 찍혀 왼쪽 눈을 실명하게 된다.

 

 

 

아울러 서울 돈암동으로 이사온 그는 어느날 친구 썰매에 오른쪽 눈이 찔리면서 끝내 양쪽눈 모두 완전 실명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용복은 이에 굴하지 않고 맹아학교에 입학하여 각고의 노력으로 점자 악보를 스스로 읽게되고 중학교 3학년때 그룹 '캑터스'를 결성하는 의지력을 발휘한다.

 

 

 

1972년 2월 이용복은 12년만에 서울 맹아학교를 졸업하고, 남진, 윤정희 주연의 '어머니 왜 날 나셨나요'란 영화에 특별 출연하고, 양희은의 데뷔 음반에 참여하며 큰 사랑을 받았다.

 

 

 

또한 이용복은 조용필, 투코리안스와 함께 전속금 100만원이란 파격적인 조건으로 오아시스와 전속 계약을 맺어 '친구', '사랑의 모닥불' 등으로 가요차트 정상에 오르는 등 승승장구하게 된다.

 

 

 

이후 2000년 용문사 입구로 옮겨 모텔과 녹음실을 병행하며 운영하면서 지난 2001년 녹음사업을 접고 양평으로 이사해 비행기를 개조한 '공항'이란 비행기 카페를 열어 인기를 누리다 최근 인천 연수구로 전격 이사를 하게 된다.

 

 

항상 음악을 만들고 선후배들과 녹음작업도 함께하며 노래를 부르는 이용복은 데뷔한지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자신이 받은 사랑만큼 그 사랑을 전하기 위해 전국을 돌며 라이브 공연, 양로원과 교도소 봉사 공연 등을 다니며 봉사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이용복은 “연수구 주민으로서 진정한 문화 공간 그리고 쉼터를 제공하고 싶으며 나아가 교회 및 봉사 활동에도 전념할 것”이라며 “직장인 밴드 및 색소폰 동호회원들이 자유롭게 연주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 하도록 하겠다”고  자신의 터전에서 할 수 있는 일과 소망을 밝혔다.

 

 

 

이용복의 정신적 지주인 한 인사는 “장애를 극복하고 한 시대 가요계를 풍미했던 그가 연수구에 살고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우리지역의 브랜드 가치는 높아지는 것”이라며 “그가 장애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봉사활동에 전념하고 있다는 것은 성품과 인격을 넘어 인간승리가 아닐 수 없다”고 이용복을 극찬했다.

 

 

 

"인생다큐 마이웨이 이용복"

 

1970년대 `잊으라면 잊겠어요`, `달맞이꽃` 등으로 사랑을 받은 한국 최초 시각장애인 가수 이용복. 기타를 손에 잡은 이후 한 번도 기타를 놓아본 적이 없는 그가 40년이 흐른 후에도 봉사를 실천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실제로 이용복은 지금도 전국을 돌며 라이브 카페 공연, 양로원과 교도소의 봉사 공연을 다니고 있다. 자신이 받은 사랑만큼 그 사랑을 전할 뿐이라는 그의 인생철학 때문이다.

 

 

 

"이용복 부인 김연희"

 

이용복이 인기를 끌었던 순간뿐 아니라 주어지는 무대가 드문드문하게 줄어든 지금까지 음악의 길을 계속 고집할 수 있었던 데는 그의 뒤를 빛과 그림자처럼 지켜준 아내 김연희 씨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용복 부인 김연희 사진, 두 노부부의 모습이 참 아름다워 보인다)

 

무대에 오르지는 않지만 무대 뒤에는 항상 이용복 아내 김연희 씨가 자리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남편을 위해 악기를 챙겨주고, 어떻게 공연할지 프로듀서와 회의를 하고, 공연대본을 봐주는 일까지 이용복 부인 김연희 씨가 없다면 번거로운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을 거다.

 

 

이용복 아내 김연희 씨는 식사하면서 남편에게 반찬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쌍둥이 아이들을 위해 악역을 자처해 올바른 길로 인도하면서 이용복 씨의 일상 하나하나를 챙기고 있다.

 

 

이런 아내 김연희 씨 덕분에 이용복은 곡을 쓰고 아내는 작사를 하며, 둘의 인생을 담은 신곡들을 함께 만들며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중이다.

 

 

눈이 안 보인다고 해서 포기할 일이란 없다고 음악작업에도 늘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며, 등산 등 야외활동에도 늘 함께 하는 부부. 서로의 빛과 그림자가 되어 아름다운 인생길을 걸어가고 있는 가수 이용복 씨 부부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인생다큐 마이웨이를 통해 꼭 보시길. 그리고 추워지는 겨울, 당신들의 얼굴 속에 따뜻한 미소가 번져있길 또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