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맨 김학래 임미숙 집안 아들 김동영, 김학래 모발이식

 

 

심형래 임하룡 최양락과 더불어 김학래 등 이들을 시작으로 대한민국 코미디계에 많은 개그 콤비들이 등장했다. 그 가운데1983년부터 1992년까지 방영됐던 ’유머 1번지‘. 당시 김학래는 시청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당시 호랑이 탈을 쓰고 개그를 했던 김학래가 기억이 많이 난다.

 

 

개그맨 김학래 프로필


 출생 생년월일 1954년 8월 25일

김학래 나이 64세 고향 충청남도 천안시
 

신체 몸매 김학래 키 170cm, 몸무게 68kg, 혈액형 B형
 김학래 본관 강릉 김씨
 

가족 집안 김학래 어머니 아버지 부모님

배우자 김학래 아내 부인 임미숙

자녀 김학래 아들 김동영
 직업 코미디언, 사업가
 김학래 종교 무종교 → 개신교

 

소속사 뉴에이블엔터테인먼트

소속 차이나린찐 대표

 

김학래 학력홍익대학교 대학원 경영학과 

데뷔1977년 KBS 특채

 

사이트sns 김학래 공식사이트

 

 

(김학래 모발이식 하며 현재 예전보다 풍성한 머리를 갖게 됐다)

 

"원조 개그맨 김학래 임미숙 부부"

 

김학래는 개그 프로그램이 시청률 40~50%를 장악하던 80년대, '저는 회장님의 영원한 종입니다. 괜찮아유. 고생 끝 행복 시작이여 등 구수한 입담으로 숱한 유행어를 제조하며 당시 큰 인기를 누렸던 감초 개그맨 이었다.

 

 

(김학래 모발이식에 대해 아침 마당에 나와 이야기한 바 있다. 실제로 굉장히 모발이식이 잘 된듯 더욱 젊어진 모습이다)

 

 또한 김학래 부인 임미숙은 당대 최고의 개그 프로그램인 유머 1번지와 쇼 비디오 자키뿐만 아니라 수많은 CF에도 출연하며 미녀 개그우먼으로 유명했던 인물이다.

 

 

특히 임미숙은 동료 개그맨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았는데, 김학래의 열렬한 구애 끝에 이들은 10살의 나이 차이를 넘어 결혼에 골인했다고 한다.

 

 

 

"김학래 임미숙 러브스토리"

 

  개그맨 임미숙은 과거 김학래에 교회를 안 나가면 결혼할 생각이 없다고 퇴짜를 놓았다고 한다. 그러니 김학래가 개그맨실에서 성경책을 가지고 와서는 임미숙 앞에서 왔다 갔다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매일 임미숙한테 와서 오늘 설교 말씀을 이야기하며, 이제 예수님을 영접 했으니 결혼해 달라고 계속 구애를 했다고.

 

 

  당시 김학래는 임미숙에게 퇴짜 맞았을 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었다고 한다. 온갖 유행가 노래 가사가 본인을 위해 만든 것 같았다고. 그래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귀찮게 하며, 최양락한테도 얘기하고, 이경애한테도 도와 달라 얘기하며, 연애편지를 쓰고 하며 이루어진 결정체가 김학래 임미숙 부부라고 한다.

 

 

 

이렇게 어렵게 결혼한 그들이지만 신혼 초의 결혼 생활은 생각처럼 행복하지만은 않았다고 한다. 결혼하고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서부터 김학래는 아내 임미숙의 속을 썩일 때마다 잘못을 반성하고 각서를 쓰며 용서를 구했다고 한다.

 

 

그렇게 차곡차곡 모아 둔 김학래의 각서가  무려100여 장을 헤아린다. 이런 기억이 과거엔 아팠지만, 이제 김학래 임미숙은 이것도 연애편지와 함께 추억처럼 말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김학래와 임미숙이 사업 실패에 기죽지 않고, 서로의 사랑을 더욱 굳건히 할 수 있었던 것은 아픔을 함께 견뎠기에 가능한 것 아닐까 생각한다.

 

 

 

거리의 낙엽 한 장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세상만사에 호기심이 가득한 임미숙과 성실하고 우직하게 ‘마이 웨이’를 걸어 온 김학래. 서로의 다른점을 인정하기 까지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10살 가까이 나는 나이 차이만큼 여러 성향을 가지고 있었고, 또 각자 바라는 가족의 모습도 많이 달랐다. 6남매 중 막내로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임미숙은 가정적이고 자상한 남편을 기대했다.

 

 

 

하지만 장남의 무게를 짊어지고 사랑 표현에 서툴고 무뚝뚝한 남편 김학래는 임미숙이 남편과 더 많은 것을 함께하기를 바란 기대를 번번이 좌절시켰다.

 

 

개그맨 임미숙 프로필

 

임미숙 코미디언
출생1963년

임미숙 나이 55세

김학래 임미숙 나이차이 9세

소속 차이나린찐 대표

 

가족 집안 임미숙 어머니 아버지 부모님

배우자 임미숙 남편 김학래

임미숙 아들 김동영

 

임미숙 학력 서울예술대학교 연극과

데뷔1984년 KBS 제2회 개그콘테스트

 

 

 

남편 김학래 또한 가장으로서 경제 활동에 충실하고자 했기에 아내 임미숙의 요구가 때로는 버거워지며 갈등을 겪에 됐다고 한다.

 

 

 

이런 둘이 만났으니 결혼 초기 부부의 생활은 경제적으로도 순탄하지 않았다. 피자집, 고깃집, 라이브 카페 등 도전했던 사업마다 번번이 실패했고, 김학래가 믿었던 사람에게 사기까지 연이어 당하면서 부부는 수십억의 빚을 안고 파산 위기에 몰려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다.

 

 

 

결국 거듭된 위기로 인해 임미숙은 우울증과 공황장애까지 앓게 됐고 방송 활동마저 접었다. 공황장애가 병이라는 것도 많이 알려져 있지 않던 시절, 곁에 있는 김학래조차 아내 임미숙이 아프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했다고 한다.

 

 

(과거 유머1번지 고 김형곤과 김학래의 모습)

 

이렇게 가족들에게도 이해를 받지 못한다는 사실은 임미숙을 더욱 슬프고 힘들게 했다. 하지만 이런 힘든 시기를 극복한 김학래 임미숙은 8년 만에 함께 방송에 출연하는 등 진솔한 사랑을 하고 있다.

 

 

 

"사람이 좋다 임미숙 김학래"

 

임미숙이 공황장애를 겪던 어느 날 김학래가 혹시 너 어디 아파? 그 말을 10년 만에 임미숙에게 했다고 한다. 그때 임미숙의 눈에 눈물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흘르며, 병원에 가게 된 거라고. 마음에서 오는 보이지 않은 병을 숨기다 10년만에 병원 치료를 받았던 것이다.

 

 

  당시 임미숙 상태에 대해 김학래는 공황장애가 뭔지도, 그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도 몰랐다고 한다. 하지만 긴 세월이 지나 지금은 그걸 이해하고 지금은 공황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 어느정도 도움을 줄 수 있을 정도가 됐다고 하니 참 다행인듯 싶다.

 

 

 

  이런 김학래의 변화에 아들 김동영은옛날에는 무조건 엄마 편이었는데, 지금 보면 아빠의 이성적인 면이 엄마의 따뜻한 면과 잘 융합된단느 걸 알게된다며, 이렇게 계속 두 분이 조금 더 알차고 즐거운 삶을 보내길 바란다고 이야기 했다.

 

 

"김학래 임미숙 중국집 린찐 사업"

 

 이렇게 서로를 알아가며 극복하게 되면서 이들은 행복한 인생 제 2막을 걷게된다. 바로 김학래 임미숙 중국집 린찐으로 연매출 100억대 사업가로 변신하며 고생끝 행복 시작을 알린 것.

 

 

 

앞서 말씀 드린 바와 같이 김학래 임미숙 부부가 28년차 부부로 여전히 함께할 수 있었던 것은 서로에 대한 믿음을 지켜 냈기 때문이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조금씩 맞춰 가려 노력하면서 마음에 안정과 평화가 찾아왔고, 임미숙의 공황장애도 서서히 치료되면서 이렇게 중국집 사업도 성공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경제적으로 재기하기 위해서도 부부는 쉬지 않고 함께 노력했다. 김학래는 30여 년간 꾸준히 해온 방송 활동 및 각종 행사 진행, 강연에 부지런히 다녔고, 임미숙은 부부가 새로 창업한 중식당 운영에 전념했다.

 

 

 

과거의 실패 경험을 밑거름 삼아 부부의 삶을 일으키기 위한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으로 창업한 중국집은 좋은 음식 재료와 맛, 손님 한 명 한 명의 취향과 특징, 심지어 화장실 청소까지 직접 챙기는 임미숙의 살뜰한 노력 덕분에 꾸준히 성장했다.

 

 

또한 자체 개발한 메뉴를 홈쇼핑에 런칭하면서 부부는 연매출 100억 원까지 달성했고, 마침내 10여 년 만에 남은 빚도 다 갚으며 재기에 성공했다. 성공한 사업가로서 인생 제2막을 꽃피우고 있는 김학래 임미숙 부부. 아픔을 이겨 낸 부부는 자기를 고집하기보다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 주며 나누고 함께할수록 삶이 더욱 풍성해진다는 것을 느낀다. 이런 김학래와 임미숙이 이제는 건강관리에 더욱 힘써 행복하고 멋진 여생을 함께 보내길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