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겸영애 별세 이영돈pd ,김영애 빈소

 

 

췌장암과 싸워 온 사극의 여왕이자 중견 배우 김영애가 세상을 떠났다. 향년 66세다. 어린나이는 아니지만 아직 살 날이 많이 남은 나이이기에 이러한 안타까움은 더하는 것 같다.

 

김영애는 항시 아들을 아끼는 모습을 보여왔다. 그런데 이런 일이 터지다니 형언할 수 없는 마음이다. 무언가 고 최신실이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온 것 만큼이나 김영애의 죽음은 참 마음 아픈 것 같다. 췌장암이에 걸렸지만 이를 악물고 참고 연기에 매진하며 그 아픔을 견디어 냈던 김영애 선생님인데 말이다.

 

 

김영애는 9일 오전 가족과 가까운 지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았다고 한다.  신촌세브란스 병원에 장례식장과 빈소가 마련된 걸로 보아 이 곳에서 오래 입원해 계신 거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김영애는 2월 종방한 KBS2 드라마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을 촬영하는 도중 췌장암이 재발했다고 한다. 많은 시청자들과 팬들이 걱정을 했지만 자신의 출연분량인 50회를 무사히 소화하는 등 연기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보였다.

 

 

 

김영애의 지인은 한 매체에서 고 김영애는 "작품을 꼭 완주하고 싶어했다" 고 이야기했다. 김영애는 2012년 췌장암 수술을 받으며 완쾌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후 영화 변호인, 카드, 특별수사 등에 출연하며 언제나 반가운 얼굴을 마주할 수 있게 해줬다.

 

 

 

김영애 소속사 스타빌리지 측 또한 "안정과 휴식을 취하고 있으며 체력도 많이 좋아졌다"고 당시에 밝혔었다. 하지만 오늘 매체와의 연락에서는 "배우 김영애가 가족들 곁에서 이날 별세했다. 발인이나 장지 등은 가족들과 논의 후 알려드리겠다"며 슬픈 소식을 전했다.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 방영 중의 장면이다. 당시 신구 선생님과 열연을 하셔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김영애는 2012년 투병 중에도 '해를 품은 달'에 출연하였다. 당시 시청자들과 관계자들은 김영애의 병마를 알지 못해 더욱 놀라움을 자아내게했다. 투병을 숨긴채 촬영해 임한 김영애의 모습을 보면 그가 연기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수있겠다.
 

 

 

사실 일전에도 포스팅을 해드리며 고 김영애 배우의 사업가와의 재혼을 설명하며 황토팩 사업으로 영역을 넓혀가며 당시 굉장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고 말씀 드린 바 있다.

 

 

하지만 당시 이영돈pd 소비자고발 프로그램에서 황토팩에 중금속이 있다는 사건과 보도 때문에 엄청난 타격을 입고 사업을 접어야 했다는 거다. 하지만 고 김영애 배우의 황토팩에서는 중금속은 커녕 피부에 좋다는 결론만이 나왔다.

 

 

 

고 김영애는 이런 하소연을 뒤늦게 해봤지만 이미 꺾여버린 이미지의 실추는 되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결국 두번째 결혼마저 협의 이혼으로 끝났다.

 

 

이후 우울증에 시달리며 힘든 시간을 겪었다고 한다. 조슴스럽게 추측해 보자면 이러한 사건이 췌장암과 연결되는 제법 큰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병의 근본은 스트래스라고 하는 연구 보고들이 많은 만큼, 연세도 지긋하셨던 김영애는 당시 얼마나 큰 슬픔에 잠기며 죄인도 아닌데 죄인처럼 살아야 했을까 싶다.

 

 

일반인이 아니고 연예인이고, 그것도 40년 이상의 연기경력으로 쌓아온 이미지마저 실추되는 사건인데 막심한 스트래스와 우을증과 무기력함이 이런 병마까지 생기게 한게 아닌가 싶어 너무너무 안타까운 마음이다. 이영돈pd가 소비자를 위해 한거라면 그를 비판하면 안되겠지만 이런 방송들은 분명 조금 더 신중해질 필요가 있어 보인다.

 

 

 

1951년 부산에서 태어난 중견배우 김영애는 1971년 MBC 3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했다. 그해 MBC '수사반장'으로 첫 작품에 출연한 뒤 '청춘의 덫, 왕룽일가, 순심이, 모래시계, 황진희' 등을 작업하며 다양한 작품으로 연기를 선보였다.

 

 

 

영화에서도 '삼감마마 미워요'를 시작으로 '섬개구리 만세, 깃발없는기수, 미워도 다시 한번, 겨울나그네' 등의 작품에 출연해 열연했다.

 

 

김영애는 1974년 드라마 '민비'로 제 10회 백상예술대상 TV부분 여자 신인상을 받았다. 1987년에는 KBS 사랑의 시작 과 1999년 SBS 파도로 최우수 연기상으로 연기력을 인정 받았다. 영화 '변호인' 출연 당시 그는 제2의 제3의 전성기를 누리며 중견 배우로 활발히 활동을 했었다.

 

 

 

(사극의 여왕으로 군림했던 김영애의 살아 생전 모습은 참 아름다운 그 당시의 시절의 미를 풍기는 것 같다)

 

 

영화 '변호인'으로는 2014년 맥스무비 최고의 영화상 최고의 여자조연배우상, 부일영화상 여우조연상, 대종상 여우조연상, 청룡영화상 여우조연상에 이름을 올린 바 있는 만큼 당대 최고의 배우라 칭할 수 있겠다.

 

 

 

김영애는 데뷔해 47년간의 긴 세월동안 연기를 했음에도 "다음 생에도 태어나면 배우가 하고 싶다"며 "살면서 진흙탕에 빠지기도 하고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일으켜 준 것은 결국 연기였다"고 연기에 대한 진한 애정을 밝힌 바 있다.

 

하나 밖에 없는 아들 이민우 씨가 김영애의 마지막 가족이었을 터다. 아들 또한 이 사실이 얼마나 슬플까 생각된다. 진심으로 고 김영애 배우에 대한 애도를 표하며, 하늘에서는 꼭 원없이 본인이 좋아하시는 일을 하고 계시길 진심으로 바란다.